성공확률 5,000 대 1의 불가능한 작전
작전명 크로마이트, 여느 작전계획명과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 없이 무작위 단어로 선정된 크로마이트작전은 6·25 한국전쟁 당시 전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맥아더 사령부에서 기획 입안한 작전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며 예비대를 통해 망치와 모루 작전을 통해 북한군을 궤멸시키고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한 전략작전이었습니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한 필수조건이 몇 가지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해야 하며, 서해의 조수간만차를 이용해야 하기에 정확한 날짜와 정확한 기상상태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맥아더 사령부는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추가로 동원되는 예비대를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해 든든하게 지키면서 밀고 올라가는 것은 기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피해도 클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을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수많은 상륙작전을 지휘해 본 경험과 한국의 독립 이후 일본으로부터 압수하고 실제로 미군의 상륙을 통해 확보한 서해안과 제물포 등의 상세지도 및 조수정보를 이용하여 상륙하기로 최종 승인을 받아냈습니다. 결국은 워커 중장이 낙동강 방어선을 끝까지 지켜냈고, 교란을 위한 양동작전을 진행하였으며, 미군의 기상정보와 인천 앞바다의 기뢰정보를 사전에 파악하고 월미도를 제압하며 정확하게 상륙에 성공합니다. 만약 북한군이 인천과 군산의 방비를 강화하였다면 바뀌고 실패할 수 있었던 작전을 바탕으로 영화는 전개됩니다. 맥아더 사령부가 전력을 기울였던 이 작전은 많은 준비와 북한군의 실수와 기상의 도움 등 다양한 사안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결국 성공한 작전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어느 정도 실화일까?
미국의 한국전쟁 총사령관인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만큼, 강직하고 명예로운 모습위주로 그린 영화를 보고 너무 순수하게 만든 영화라며 미화했다는 점을 지정하는 평가가 많습니다. 또한 한국전쟁 전반에 걸쳐서 맥아더를 표현하게 되면 결국은 만주에 핵을 투하하자고 제안하거나, 국군이 북진을 한 이후 유엔군도 함께 북진을 하면서 압록강까지 국토를 회복하며 크리스마스는 미국으로 귀환해서 집에서 보내게 해 준다고 발언한 점, 그리고 트루먼과 미행정부가 계속해서 중국의 개입 확률을 걱정함에도 맥아더가 중공의 개입은 없을 것이고 개입하더라도 몇 만 명 수준일 것이라고 오판한 점 등 다양한 부정적인 측면은 생략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긍정적인 측면만 나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국전쟁에서 약간의 오판은 있었음에도 맥아더의 지휘하에 한국을 지켜내고 국토를 회복한 것은 사실인 것을 알고 비판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편 영화에서 국군의 진정한 희생을 미화하기 위해 억지신을 삽입하고 액션도 아쉽다는 부분이 많으며, 주인공버프로 인해 한국군은 괜찮지만 북한군은 쉽게 죽는 등 리얼함은 다소 떨어지게끔 표현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스토리라인을 위한 영화의 설정 역시 억지성이 너무 과했는데, 스파이 역할을 한 한국군이 투입되어서는 북한군의 주요 요인들을 알아보지만 북한군은 한국의 스파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허술하게 당하는 등, 실제와는 너무 다르게 미화하였고 개연성과 합리적이지 않은 전개 역시 실제와는 다르게 어설픈 연출이라고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그저 국뽕 가득이라기에는 결정적인 전략
인천상륙을 실제로 감행하던 당시, 작전에 투입되었던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교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각 부대의 위치에 따라서 교전에 치열하게 발생했던 부대도 있고, 북한군을 전혀 접하지 못한 부대도 존재하는 만큼 절대적인 사실은 아닐지라도 그에 대한 근거는, 상륙을 감행하기 전부터 미국 전 함정에서 미친듯한 함포사격을 통해 사실상 월미도를 비롯해 인천해안을 초토화시켰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현장에 있었던 인천주민들이 많이 사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점을 묻어버리는 등 안타까운 사실이 많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압도적인 화력을 통한 미국의 포격으로 인해서 북한군 경비부대는 사실상 전투의지를 완벽하게 상실하고 인천 시내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게다가 상륙에 대한 정보를 이미 중국의 모택동을 비롯하여 상당수의 수뇌부가 북한에 전달하였으나, 김일성의 가장 큰 오판 역시 결정적인 포인트였습니다. 당시 회자되며 정리된 결론으로, 김일성은 얼마 남지 않은 낙동강 전선만 돌파하면 부산까지 쉽게 돌파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부산이 함락되면 제아무리 그 어떠한 지역에 유엔군이 상륙하더라도 사실상 소용없고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하였고, 한국과 유엔군의 상륙작전이 실행되기 전에 낙동강을 돌파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공격을 강세로 더욱더 몰아붙이던 점 역시 선택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한국군과 워커 중장이 모든 목숨을 걸고 싸워 지켜냄으로써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이바지를 할 수 있었던 점 역시 결정적인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